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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돔의 역사(~2005년)

제2기 전후 1946년~1964년

column02 황금 시대의 시작

[사진]

나이터전의 상공 촬영

전장으로 몰려와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고라쿠엔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후, 고라쿠엔 구장도 「재생」한다. 고라쿠엔에서 열린 전후 제1전은 쇼와 21년 4월 6, 7일에 열린 조경전이었다.

그리고 또 고라쿠엔 구장은, 일본의 볼 파크에서, 유일하게, 「극장」이라고 부르는 구장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쇼와 24년에 제작된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 「노라견」을 보면 좋을 것이다. 만원의 관객, 그리고 다이아몬드에서는 가와카미 테츠지, 아오타 승, 지바 시게루 등 스타 선수의 발랄한 모습이 영상에 남는다.

그리고 「노라견」이 공개된 것과 같은 쇼와 24년, 쇼와 17년에 응소되어, 그 후 불운하게 시베리아에서 사로잡힌 몸이 되고 있던 수원 시게가, 상하 모두 백마의 슈트를 입고, 고라쿠엔으로 돌아온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이름 제리프이다. 그리고 수원은 거인군의 감독에 취임, 이듬해 25년부터는 세파 양리그에 의한 2리그제가 스타트해, 고라쿠엔 구장이라는 무대에서 수많은 명승부가 태어나 간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일본 야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에도 그 발자취를 새기고 있는 것이, 쇼와 34년 6월 25일의 「천람 시합」이다. 쇼와 천황의 임석 아래, 거인과 한신은 격돌, 4대 4 그대로 9회 뒤를 맞아, 이 명승부에 결착을 붙인 것이, 입단 2년째의 나가시마 시게오였다. 한신·무라야마 열매에서 던진 공을 나가시마는 레프트 폴 때에 되돌아 좌익 상단에 공은 두드렸다. 바로 고라쿠엔이 '극장'이 된 날이었다.

이 시기, 고라쿠엔은 역사에 남는 금자탑의 무대가 되었다. 쇼와 37년 9월 5일에는 국철의 가네다 마사이치가 탈삼진 3514의 세계 신기록을 달성, 그리고 도쿄 올림픽이 행해진 것과 같은 39년에는 하나의 발타법으로 개안한 왕정지가 9월 23일, 1시즌 55 홈런의 일본 기록을 마크한다.

가와카미, 아오타, 수원, 나가시마, 왕… 일본의 구사에 남는 위대한 선수들. 이들은 고라쿠엔에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인 '천양 배우'들이었다.

[사진]

이쿠시마 아츠시 / Jun IKUSHIMA
1967년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출생. 와세다대학 사회과학부 졸업. 재학 중에 FEN방송에서 NBA와 만난다. '93년부터 스포츠 라이터로서 활동을 개시해, 미국 스포츠, 스모 등을 중심으로 집필. 저서에 「NBA 원더랜드」(토쿠마 서점), 공저에 「럭비 최전선」(후타바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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